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개명의 좋은 예다. 전체적으로 상품성이 좋아진 건 맞지만 이름을 ‘디스커버리’ 스포츠로 바꾸면서 한 급 위의 이미지가 생겼다. ‘프리랜더3’보다 훨씬 낫다. 소재나 실내 디자인, 공간은 이보크보다 좋고, 소음과 진동을 잘 억제한 게 눈에 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주행 특성은 컴포트에 가깝지만 회전 성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가속력은 평범하다.
자동차 회사가 자사 제품의 이름을 바꾸는 주된 이유는 판매 부진이다. 잘 팔리면 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다. 이는 길거리의 간판과도 같다. 장사가 잘 되면 간판 안 바꾸고 그대로 간다. 반면 장사가 안 되면 수시로 간판이 바뀐다. 자동차 업계에도 적용되는 이치다.
재규어만 해도 중형급 모델의 이름이 자주 바뀌었다. 반면에 랜드로버는 대부분의 차명이 계속 유지된다. 꾸준하게 판매가 신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리랜더의 이름이 바뀌었다. 공식대로라면 프리랜더2의 후속은 프리랜더3가 돼야 한다. 하지만 후속 모델의 차명은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됐다.
사실 프리랜더2가 판매에 실패한 차는 아니다. 1세대는 그냥 그랬지만 2006년에 나온 프리랜더2(L359)는 2010년 이후 꾸준하게 글로벌 판매가 5만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5만 7,000대를 넘기기도 했다. 랜드로버는 프리랜더2의 실적이 성에 안 찼을 수도 있다. 또는 디스커버리라는 이름을 사용해 좀 더 고급화 전략을 추진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보면 네이밍 전략의 묘미가 있다. 프리랜더보다 디스커버리가 더 오래된 이름이고 가치도 높다. 프리랜더보다 차급 자체가 높다. 참고로 랜드로버의 글로벌 베스트셀러는 이보크지만, 국내에서는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가장 잘 팔리는 랜드로버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랜드로버의 LR-MS 플랫폼을 공유한다. 랜드로버는 경영권이 포드에서 타타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포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V8 디젤 엔진은 포드의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해 랜드로버로 공급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공유하는 LR-MS 플랫폼도 포드의 EUCD를 기반으로 했다. 물론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목적에 맞게 상당 부분 수정된 게 사실이다.
21세기 들어서 디자인이 가장 좋아진 회사로는 랜드로버를 꼽고 싶다. 미래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디자인은 랜드로버의 강력한 매력이다. 거기다 각 모델 간의 디자인 편차도 적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같은 엔트리 모델의 디자인도 멋지다. 비슷한 사이즈의 이보크가 독보적으로 멋져서 그렇지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빠지지 않는 디자인이다.
개명한 효과는 외관에서도 나타난다. 보닛과 트렁크에는 ‘디스커버리’가 크게 붙어 있다. 이 자리에 ‘프리랜더’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그 효과가 실감난다. 디스커버리가 훨씬 있어 보인다. 차체 사이즈는 4,599×2,069×1,724mm, 2,741mm로 이보크(4,370×1,900×1,635mm, 2,660mm)보다 전체적으로 크다. 특히 긴 휠베이스 덕분에 2열 공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19인치 알로이 휠의 디자인은 무난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타이어는 콘티넨탈의 크로스콘택트, 사이즈는 235/55R/19이다. 타이어는 이보크와 같지만 휠은 한 사이즈가 작고 편평비는 조금 높다. 타이어에서 두 차의 성격이 나타난다.
실내는 기대 이상이다. 사실 이보크의 실내는 기대에 못 미쳤다. 편의 장비도 부족하지만 소재도 랜드로버에 거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반면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충분히 고급스럽다. 더 비싼 이보크보다 낫다. 최근에 나온 차라는 티가 난다. 도어 트림만 봐도 디자인이 멋지다.
모니터 및 내비게이션의 화질 및 메뉴 폰트는 평범하지만 편의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리고 자주 쓰는 기능의 버튼은 모니터 양쪽에 배치했다. 모니터 우측의 버튼은 손과의 거리가 약간 멀고, 후방 카메라의 화질이 떨어지는 건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후방 카메라의 화질은 최근 탄 신차 중에서 가장 떨어진다.
센터페시아의 디자인은 참 예쁘다. 여기에는 디자인과 버튼 등이 포함된다. 랜드로버가 주로 사용하는 버튼의 플라스틱은 시각적으로도 고급스럽지만 눌렀을 때 작동감이 좋다. 고급차를 타고 있다는 기분을 준다. 공조장치 바람세기 및 온도조절 다이얼도 큼직해서 눈에 잘 들어온다. 공조장치 하단에는 스톱 스타트와 에코, 터레인 리스폰스 버튼 등이 배치돼 있다.
재규어에서 시작된 로터리 방식의 기어 셀렉터는 특징적인 디자인이다. 로터리 방식이 적용되면서 통상적인 기어 레버 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기어 셀렉터 앞에 요긴한 수납 공간이 생겼다. 기어 셀렉터는 시동을 켜면 자동으로 솟아오르고 시동을 끄면 가라앉는다. 폼 나긴 하지만 간혹 가다 조작할 때 걸린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수납 공간에도 신경을 쓴 티가 난다. 앞쪽 컵홀더 바닥에는 또 다른 수납공간이 숨어 있다. 뭔가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센터 콘솔 박스도 이보크보다 크다. 전반적으로 보면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실내는 괜찮은 수납 공간을 갖췄다. 센터 콘솔 박스에는 12V와 USB, AUX 단자가 마련돼 있다.
랜드로버 특유의 계기판은 타코미터와 속도계의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인다. 거기다 가운데 위치한 액정을 다 활용하지 못했다. 액정에 표시된 수온계와 연료계는 고정이고, 하단의 작은 공간에만 정보가 표시된다.
가죽 시트는 질도 좋지만 몸을 잡아주는 기능성도 좋다. 전체적으로 보면 만족감이 높은 시트이다. 거기다 포지션도 낮게 내려간다. 3스포크 디자인의 운전대에는 트립 컴퓨터와 크루즈 컨트롤 버튼이 마련돼 있다. 크루즈 컨트롤이 ACC는 아니다. 운전대에는 열선 기능도 있다.
차체 사이즈는 이보크보다 크지만 2열의 공간은 그보다 훨씬 크다. 특히 2열의 무릎 공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2열 무릎 공간은 주먹 2개 반이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고 머리 위 공간도 괜찮다. 거기다 바닥이 비교적 정리가 잘 돼 있어서 발 주변이 좁다고 느끼지 않는다. 트렁크의 기본 용량은 1,124리터(4시트 기준)이고, 2열 시트를 접으면 1,698리터로 늘어난다.
파워트레인은 2.0 디젤과 9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 출력은 180마력, 최대 토크는 43.9kg.m으로 이보크와 같다. 이 엔진은 자체 개발한 2.0 인제니움 유닛이고 가로로 배치된다.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면서 실내 공간 확보에도 유리해졌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TD4는 공회전 정숙성 및 진동 억제 능력이 좋다. 운전대로는 진동이 아주 가늘게 전해질 뿐이고, 실내로 들어오는 엔진음도 적다. 특히 엔진 룸의 방음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가속 시에도 엔진 사운드가 많이 걸러져 들어온다. 공회전의 진동 억제 능력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스톱 스타트로 재시동 시 발생하는 진동이 크다. 재시동 될 때 불쾌감도 들 수 있다. 같은 파워트레인의 이보크도 이랬다.
기어비의 간격을 좁히면서 순발력을 살렸다. 시내 주행에서는 변속기가 부지런히 일하면서 최적의 기어로 바뀐다. 즉 상황에 따라 긴밀하게 변속기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TD4의 동력 성능은 일상용도에서 주로 사용하는 중저속에서 강점이 있다.
달리 말하면 고속까지 뻗는 힘은 부족하다. 이 역시 이보크와 같다. 1~5단에서 낼 수 있는 있는 최고 속도는 각각 30, 55, 80, 110, 150km/h이고, 6단으로 들어가면 가속이 주춤하다. 185km/h에서 7단으로 넘어간 후에는 아주 천천히 가속이 이뤄진다. 이보크와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2.0 디젤 엔진의 스포티지, 투싼보다 가속이 느리다.
고속 안정감은 좋다. 고속 주행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세팅이다. 요즘은 하체를 부드럽게 세팅하면서도 고속 안정감과 회전 성능까지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데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여기에 해당된다. 상대적으로 전고가 높은 차인 것을 감안하면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탁월하다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코너링 성능도 좋다. 코너 진입 시 차체가 많이 기울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조향에 맞춰 정확하게 움직인다. 가속과 회전 성능은 이보크보다 덜 스포티하다. 같은 엔진의 이보크보다 가속력이 약간 떨어지고, 회전하는 속도는 조금 느리다. 두 차의 차별화를 위한 세팅 같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장점이 많은 차다. 디자인을 비롯한 많은 장점들이 소소한 단점을 덮는다. 프리랜더2보다 상품성이 월등히 좋아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름을 바꾼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차명에 ‘디스커버리’가 들어간 게 상품성을 더욱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