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E 클래스를 통해 베스트셀러의 매력과 저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신형 E 클래스는 S를 방불케 하는 실내와 국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탁월한 정숙성까지 갖췄다. 9단 변속기의 완성도도 생각보다 좋다. 하체는 승차감과 회전 성능을 모두 만족하지만 고속 주행 시 E 클래스 특유의 안정감은 많이 희석됐다.
신형 E 클래스의 외관 디자인은 완전히 달라졌다. 구형과 달리 신형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다. S와 C를 섞은 것 같지만 C에 보다 가깝다. 차체 사이즈는 늘어났지만 시각적으로는 작아 보인다. 차체 사이즈는 4,925×1,850×1,460mm, 2,940mm으로, 구형 대비 전장은 43mm, 휠베이스는 65mm가 늘어났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실내 공간을 늘리는데 할애됐다.
디자인은 아방가르드와 익스클루시브 트림에 따라 약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그릴의 위치다. 아방가르드는 세 꼭지 별 엠블렘이 그릴에 붙지만 익스클루시브는 보닛 위에 붙는다. 개인적으로는 보닛 위에 있는 게 더 좋다. 운전할 때 살짝 보이는 벤츠의 엠블렘은 만족감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뒤는 넓게 퍼져서 내려오는 트렁크 라인 때문에 차를 커 보이게 한다. 그리고 뒷모습 역시 매끈하다. 실제로 신형 E 클래스의 공기저항계수는 상당히 낮다. 엔트리 모델의 경우 공기저항계수가 0.23에 불과하다. 참고로 E 300 4매틱의 공기저항계수는 0.27이다.
타이어는 245/45R/18 사이즈의 굿이어 이글 F1 아시메트릭 3이다. 대부분의 벤츠가 그렇듯 휠을 크게 쓰지는 않는다. 18인치 휠의 디자인은 다소 심심한 감이 있다.
E 클래스의 실내는 S 클래스를 방불케 한다. 기본적인 디자인이 같을 뿐만 아니라 소재까지 빼어나다. S 클래스의 축소판이다. E 300의 경우 모니터의 화질(1920×720 픽셀)이 좋은 것도 시각적인 고급감을 높여준다. 모니터의 선명한 화질 및 원형 디자인의 송풍구, 가죽 등이 벤츠 특유의 고급스러운 실내를 완성한다. E 클래스의 실내는 동급에서 가장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 클래스처럼 계기판과 모니터는 2개의 12.3인치 TFT로 구성돼 있다. 얼핏 보면 하나로 연결된 것 같다. 내비게이션 맵의 화질 역시 뛰어나고, 안에는 많은 기능들이 내장돼 있다.
운전대는 주로 손이 닿는 부분을 펀칭 처리해 그립감을 높였다. 전형적인 벤츠 또는 독일차의 감각이다. 림의 굵기도 적당하다. 양쪽의 네 방향 키는 누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슬라이딩 시켜서 조작할 수 있다. 좌측은 계기판, 우측은 모니터의 메뉴를 컨트롤 한다. 길이와 높이 조절 역시 모두 전동식이다.
모니터에는 주요 기능을 통합했다. 따라서 센터페시아에는 최소한의 버튼만 있다. 모니터 아래에는 주로 사용하는 공조장치 및 내비, 라디오, 미디어 버튼만 마련된다. 그 아래에 있는 수납함도 유용하다. 핸드폰을 포함해 자잘한 물건을 수납하기가 좋다. 이 수납 공간에 있는 재떨이 및 컵홀더는 탈착도 가능하다. 실내의 다른 부분에 비해 재떨이와 컵홀더의 플라스틱 재질이 많이 떨어진다. 커맨드 컨트롤러 주변에는 드라이브 모드와 스톱 스타트, 360도 카메라, 오디오 볼륨 버튼 등이 모여 있다. 이 부분의 소재도 빼어나다. 신형 E 클래스는 손글씨 기능도 추가됐다. 손으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입력할 수 있는데, 다른 수입차들처럼 한글의 인식 기능이 좋은 편은 아니다. 360도 카메라는 화질이 최고 수준이다. 대단히 선명한 화질을 제공한다.
디지털 계기판 역시 화질이 정말 좋다. E 클래스 실내의 백미 중 하나다. 계기판만 봐도 눈이 즐거울 정도이고, 속도계와 타코미터 바늘의 움직임도 자연스럽다. 주요 정보가 표시되는 중앙 부분의 액정은 화질도 좋지만 면적도 크다. 따라서 눈에 아주 잘 들어온다.
시트의 안락함 역시 최고 수준이다. 쿠션은 약간 탄탄한 편이고 허벅지는 물론 옆구리를 잡아주는 기능성도 뛰어나다. 거기다 쿠션의 앞부분을 확대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다. 장거리 또는 운전 시간이 길 때 유용하다. 허벅지 안쪽을 받쳐주니 한결 편하다.
2열의 무릎 공간은 주먹 2개 반 정도가 들어간다. 비슷한 사이즈의 앞바퀴굴림 차에 비해 무릎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성인이 앉기에는 무리 없다. 다만 가운데 부분이 불룩 솟아 있어서 가운데 시트에 성인이 앉기는 힘들다. 2열 시트 역시 1열과 동일한 수준으로 안락하다. E 클래스는 2열 유리의 두께가 눈에 띈다. 다른 차의 1열 유리보다 두껍다. 그만큼 방음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할 수 있다. S 클래스처럼 실내의 조명도 모두 LED이다.
트렁크 용량은 540리터이고 정리가 잘 돼 있다. 트렁크 양쪽의 레버를 당기면 2열 시트의 잠금 장치가 풀린다. 그러니까 2열 시트를 접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열 시트의 가운데 부분은 안쪽의 버튼을 눌러서 접는다. 트렁크는 천정의 철판이 보이는 게 다소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엔진은 새로 개발된 2.0 터보 가솔린이 탑재되고 변속기는 9단 자동이다. 새 2.0 터보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은 245마력, 37.7kg.m의 최대 토크는 1,300~4,000 rpm 사이에서 나온다. 최대 토크가 나오는 회전수가 1,300 rpm에 불과한 게 눈에 띈다. E 300은 주행 중 정숙성은 좋지만 공회전은 그렇게 좋다고 할 순 없다. 특히 엔진의 음색이 좋지 않다. 얼핏 들으면 디젤 엔진 같기도 하다.
다운사이징 됐지만 운전하는 감각은 2.0 이상의 배기량 같다. 무엇보다도 저속 토크가 좋고, 운전자의 입력에 따른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꾸준하게 토크를 생산한다. 물론 고속으로 올라가면 기존의 자연흡기 대비 토크가 조금 부족한 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엔진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무엇보다도 연비가 좋다. 1~5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약 45, 80, 115, 155, 213km/h이다. 기어가 9개나 되지만 의외로 간격이 좁은 편은 아니다. 그러니까 새로 개발된 9G-트로닉은 연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통 다단화 변속기는 연비는 물론 가속에도 도움이 되는데, E 300의 9단은 보다 연비를 위한 세팅이다.
최고 출력과 토크를 생각하면 고속까지 뻗는 힘은 좋다. 6단 5,500 rpm 조금 못 미쳐서 230km/h에 도달하고, 이 상태에서도 속도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회전수의 여유를 생각하면 250km/h의 속도 제한은 6단에서 나올 거 같다. 스포츠+ 기준으로 급가속 시 자동 변속 되는 시점은 6,200 rpm 정도다. 1단에서만 6,000 rpm 이하에서 변속된다. 9G-트로닉은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다. 고회전에서 변속할 때 절도감 있게 작동하고, 무엇보다도 변속 충격이 거의 없다. 스포츠+ 모드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충격은 인위적인 세팅으로 보인다. 시승하면서 딱 한 번 강한 변속 충격이 생기긴 했지만 벤츠 9단의 성능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7G-트로닉의 초창기를 생각하면 9G-트로닉의 완성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고속 안정성은 벤츠답게 탁월하다.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을 모두 만족하는 성능이고, 운전자에게 주는 심적인 안정감도 높다. 편하게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차다. 단 구형을 기준으로 얘기를 한다면 E 클래스의 특유의 감각은 다소 희석된 게 아쉽다. 물론 서스펜션 세팅이 다른 버전이라면 이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회전할 때도 안정감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평상시의 하체 움직임으로 보면 코너에서는 차가 많이 기울어질 거 같은데 막상 회전할 때는 그렇지 않다. 진득하게 노면을 붙잡고 돌아나간다. 스티어링 역시 비교적 느슨한 편이지만 코너에서는 반응성이 살아 있다. 일상 주행에서는 물론 빠르게 회전할 때도 정확한 감각을 제공한다.
정속 주행 연비도 괜찮다. 90km/h로 정속 주행하면 순간 연비는 보통 17~18km 사이, 110km/h에서는 14~15km 사이가 나온다. E 모드 기준으로 90km/h 정속 주행에서는 7단, 110km/h에서는 8단으로 달린다. 이때의 회전수는 2,000 rpm이 조금 안 되고, 9단은 110km/h 이상에서 들어간다. 물론 수동 조작을 통해 9단을 넣을 순 있다. 110km/h에서 9단으로 달리면 회전수는 1,600 rpm으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주행은 8단에서 끝나고 9단은 110km/h 이상의 속도를 위한 항속용 기어다.
E 300에 탑재된 스티어링 어시스트는 차를 차선 가운데로 유지하는 기능이 뛰어나다. 차선 한쪽에 붙기 전에 세밀하게 제어한다. 이 기능이 떨어지면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는 사용이 힘들다. 하지만 E 300은 어느 정도 통행량이 있는 상황에서도 스티어링 어시스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다. E 300의 스티어링 어시스트는 뉴 Q7과 함께 가장 좋은 성능을 낸다. 제동력 역시 최고 수준이다. 고속에서 급제동 2회 이후에도 페이드가 없고, 좌우 밸런스도 훌륭하다.
E 클래스는 이름과 브랜드 밸류만으로도 기본적인 판매가 보장된 차다. 그런데 S 클래스를 방불케 하는 실내와 탁월한 정숙성, 수많은 안전 장비까지 갖췄으니 잘 팔리는 게 당연하다. 신형 5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 수입차 시장에서도 독주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