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자동차 메이커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슈퍼카를 떠올리게 된다. 반면 웬만한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면 일본 자동차 메이커의 슈퍼카가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혼다는 1960년대부터 자동차 레이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포뮬러1에 참가해 기술력을 갈고 닦아왔고, 세계에 통하는 혼다의 얼굴을 갖고 싶다는 염원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등장한 모델이 바로 1세대 NSX다. NSX는 혼다의 신형 스포츠카 개발 프로젝트(New Sports eXperimental)를 뜻한다.
NSX는 당시 시판차량으로는 유례없는 올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를 채용한 모델로,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가 테스트를 맡기도 했다. 아일톤 세나는 초기 NSX의 차체강성을 높일 것을 요구했고, 혼다의 엔지니어는 당시 생소했던 알루미늄 소재로 경량 고강성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NSX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혼다를 대표하는 슈퍼카로 자리매김했다. NSX는 미드십 레이아웃에 배기량 3리터의 자연흡기방식 V6 DOHC VTEC 엔진을 탑재해 270-29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당시 자연흡기 방식 엔진으로 리터당 100마력에 가까운 배기량 대비 출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F1을 통해 갈고 닦은 혼다의 뛰어난 엔진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NSX는 제작 공정 대부분이 로봇이 아닌 사람에 의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고, 차체에서 엔진까지 당대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제작되었다. 이 같은 배경으로 NSX는 일본 최초의 슈퍼카로 평가 받기도 한다.
혼다는 2005년 NSX를 단종 시켰다. 단종의 이유는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에 맞추기가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 등을 이유로 2011년까지 후속 모델의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다. NSX의 후속 모델이 개발 중이라는 루머가 몇 번이나 돌았지만 혼다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해왔다.
2011년 혼다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어큐라를 통해 NSX의 콘셉트 모델을 공개했다. 어큐라 NSX 콘셉트 로드스터는 마블코믹스의 영화 ‘어벤저스’에서 토니 스타크의 애마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2013 디트로이트오토쇼에서 양산화 직전의 최종 콘셉트카를 공개하였고, 2015년부터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새로운 2013 어큐라 NSX 콘셉트는 하이브리드 기술이 적용된 슈퍼카로, 뒷바퀴를 굴리는 V6 직분사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그리고 2개의 전기모터가 앞바퀴 구동을 담당하는 SH-AWD라는 4륜구동 기술이 적용된다.
혼다는 어큐라 NSX의 생산을 위해 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해 미국 오하이오주에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에서 어큐라 NSX는 100여명의 장인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생산될 계획이다. 이 같은 아낌없는 투자는 혼다가 어큐라 NSX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혼다는 지난 주말 일본 슈퍼GT가 열린 스즈카 서킷에서 NSX 콘셉트GT 레이스카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레이스카는 일본 슈퍼GT 시리즈의 GT500클래스에 참가하기 위한 모델이며, 그동안 혼다가 개발 중이던 슈퍼카 어큐라 NSX 콘셉트를 베이스로 제작되었다.
NSX 콘셉트GT는 레이스카이기 때문에 양산모델과는 제원이 다르다. 2리터 직분사 터보차저 4기통 엔진이 탑재되며, 하이브리드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는 엔진의 자세한 제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외형은 어큐라 NSX 콘셉트 모델을 바탕으로 레이스를 위한 각종 에어로 키트를 장착하여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낮은 차체에 와이드보디 킷이 적용되었고, 프런트 스플리터와 측면의 통풍구, 거대한 리어윙을 비롯한 에어로 킷이 장착되었다.
어큐라 NSX GT 콘셉트는 서킷을 달리기 위한 레이스 콘셉트 모델로 2015년 시판예정인 양산모델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킷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일본을 대표할 차세대 슈퍼카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다. 아직 어큐라 NSX의 실물을 직접 몰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슈퍼카가 서킷을 달리는 모습만으로도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은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