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유독 왜건의 인기가 낮다. 왜건이 가진 ‘짐차’라는 이미지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유럽 자동차시장에서 왜건이 받는 대우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육로를 통한 여행,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 왜건만큼 편리한 차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거의 수입되지 않지만 여러 고급차 메이커들이 실용성과 럭셔리함, 스포티한 주행성능을 모두 갖춘 왜건을 만들고 있다.
혼다는 지난 3월 열린 제네바모터쇼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승용차 시빅의 왜건형 모델인 시빅 투어러 콘셉트를 공개했다. 시빅 투어러 콘셉트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시빅 유로 해치백을 베이스로 만들어졌으며, 기존 상자 형 왜건의 틀을 벗은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빅 투어러 콘셉트는 혼다가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모델이며, 일본이 아닌 영국의 혼다 유러피언 R&D팀이 개발을 주도했다. 혼다는 시빅 투어러 콘셉트가 스포티한 실루엣을 가졌지만 실용성을 포기하지 않은 모델이라 소개 했다.
일반적으로 콘셉트카 중에는 실제로 양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델도 많다. 하지만 시빅 투어러 콘셉트는 이미 시판되고 있는 승용차인 시빅 유로 해치백을 베이스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처음부터 혼다가 양산을 염두에 두고 콘셉트카를 개발했음을 의미한다.
혼다는 콘셉트카 공개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양산형 모델인 2014 시빅 투어러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2014 시빅 투어러는 부분적인 디자인 변화는 있지만, 차체 실루엣을 비롯한 콘셉트카의 특징 대부분이 양산형 모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시빅 투어러의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A필러에서 시작되어 D필러까지 이어지는 심플한 루프라인이다. 차체 후방의 쿼터 윈도우의 유리가 D필러를 감싸고 있어 밖에서 보면 마치 차체와 루프가 분리되어 유리창 위에 떠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혼다는 이를 플로팅 루프라인 디자인이라 부른다.
전면에서 보아 역삼각형을 이루는 라이트와 그릴 디자인은 시빅 유로 해치백과 인상을 공유한다. 날카롭고 날렵한 느낌은 기존 왜건이 가진 왜건이 투박하고 둔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후면을 가로지르는 테일라이트 역시 기존 시빅 해치백의 테일라이트와 모습이 닮았다. 테일라이트는 옆에서 보았을 때 후방으로 살짝 돌출되어 있으며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한다.
혼다UK의 시빅 투어러 개발책임자 아드리안 킬햄은 시빅 투어러가 다른 왜건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우선 시빅 투어러가 다른 왜건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지녔다는 건 분명합니다. 최근에 런칭 된 차들은 서로 닮은 스타일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빅 투어러는 완전히 차별화된 균형미와 매력을 지녔습니다."
아드리안 킬햄은 시빅 투어러가 무척 스포티한 디자인을 가졌지만, 실용성과 타협하여 만들어진 차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증거는 바로 트렁크를 비롯한 적재 공간이다. 혼다 시빅 투어러는 C, D세그먼트 최고 수준의 트렁크 공간을 가졌다. 624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제공하는데, 뒷좌석 시트를 접으면 무려 1668리터의 공간이 만들어져 큰 짐도 실을 수 있다.
보통 콤팩트카를 디자인할 때는 차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부 공간을 키우기 위한 디자인을 놓고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빅의 플랫폼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간의 문제에 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디자인 할 수 있었습니다."
시빅 투어러의 인테리어 및 실내공간은 시빅 유로 해치백과 많이 닮았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부분은 연료탱크 레이아웃이다. 차체 후방 측면에 연료탱크가 있는 승용차들과 달리, 시빅 투어러는 연료탱크가 앞좌석 시트 하단에 위치한다. 이 같은 연료탱크 레이아웃은 혼다가 처음으로 개발한 것으로 차량의 내부 공간 활용에 무척 유리하다. 시빅 뿐만 아니라 혼다의 소형차에 널리 사용되는 구조이며, 혼다차가 차체 크기에 비해 실내공간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빅 유로와 마찬가지로 시빅 투어러의 뒷좌석에는 혼다 매직 시트라는 기술이 적용되었다. 등받이를 앞으로 접으면 트렁크공간과 바닥이 평평하게 이어지며 넓은 적재공간이 만들어진다. 또 반대로 등받이를 세운 상태에서 시트를 위로 올려 접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방식은 화분처럼 높이가 높은 화물을 편리하게 실을 수 있다. 시트는 레버 하나로 간편하게 접고 펼 수 있으며, 60:40의 비율로 시트의 일부를 접어 뒷좌석에 사람이 탑승한 상태에서 짐을 함께 싣는 것도 가능하다.
혼다 시빅 투어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뒷바퀴의 서스펜션에 어댑티브 댐퍼 시스템(ADS)이 장착되었다는 점이다. 왜건은 일반 승용차보다 많은 화물을 싣는 차다. 때문에 화물을 실었을 때와 공차 상태일 때의 중량이 다르며, 각각의 주행 특성이 달라진다. 어댑티브 댐퍼 시스템은 차량의 중량과 주행상황에 따라 서스펜션의 특성을 변화시켜 주행안정성과 편안함을 높여준다.
어댑티브 댐퍼 시스템이 혼다의 양산차에 적용된 것은 시빅 투어러가 처음이다. 어댑티브 댐퍼 시스템은 컴포트와 노멀, 다이내믹의 세 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고속도로 크루징 시 편안한 주행감각을 선사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단단한 서스펜션이 받쳐주는 민첩한 핸들링 실력을 내보일 준비가 되어있다.
엔진은 혼다 어스드림 테크놀로지 시리즈의 1.6리터 I-DTEC 디젤엔진, 혹은 1.8리터 I-VTEC 가솔린엔진이 탑재된다. 1.6리터 I-DTEC 엔진의 최대출력은 120마력이며, 1.8 I-VTEC 엔진의 최대출력은 142마력이다. 1.6 I-DTEC 디젤 엔진은 시빅 유로 해치백에 처음으로 탑재되었으며, 유럽 자동차 시장에 도입된 첫 혼다 어스드림 테크놀로지 엔진이기도 하다. I-DTEC 엔진은 시빅 투어러와 마찬가지로 혼다 영국 공장에서 제조된다.
시빅 투어러는 오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식 데뷔할 예정이며, 아직 구체적인 제원과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영국과 유럽에서 내년 초부터 판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