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 마니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현재의 토요타는 별로 매력 없는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의 토요타는 86이라는 스포츠카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브랜드를 상징할만한 하이퍼포먼스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토요타가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를 통해 고성능 스포츠카 라인업을 구축한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기는 이래저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타의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면 스포츠카가 빠지지 않는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스포츠카 2000GT와 지난 1998년 단종 된 후륜구동 스포츠카 수프라가 대표적이다. 토요타의 수프라는 특히 북미 시장에서 사랑을 받았으며, 단종 된지 15년이 넘은 지금도 튜닝카 이벤트 등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만큼 큰 인기를 얻었고, 또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디트로이트 오토쇼 개막이 머지않았을 때 토요타가 ‘수프라 콘셉트카’를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토쇼의 개막 직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포츠카의 뒷모습 사진이 공개되며 사람들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는데, 그 정체는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토요타가 공개한 콘셉트카 FT-1이었다. 비록 '수프라 콘셉트‘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FT-1에 차세대 수프라 디자인에 대한 힌트가 담겨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FT-1 콘셉트는 그 이름이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한다. Future Toyota, 그리고 1이라는 숫자는 ‘궁극’을 의미한다. 토요타는 FT-1 콘셉트카가 미래 토요타 디자인의 감성적 요소와 에너지를 담은, 글로벌 디자인을 이끌어갈 페이스카라고 말한다. FT-1 콘셉트는 토요타의 북미 디자인 브랜치인 칼티(CALTY) 디자인 리서치가 그려냈다. 과거 칼티 디자인 리서치가 디자인한 콘셉트카 FT-HS(2007)와 렉서스 LF-LC(2012)의 디자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한다.
토요타 FT-1 프로젝트는 약 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FT-1은 저 같은 자동차를 사랑하는 디자이너에게 있어 꿈의 프로젝트입니다.” 칼티 디자인 리서치 치프 디자이너, 알렉스 쉔의 말이다. “우리 팀은 토요타의 과거 스포츠카, 특히 셀리카와 수프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역사의 일부를 캡처하고자 했습니다. FT-1은 공격적이고 트랙에 초점을 맞춘, 충격과 공포를 가져올 스포츠카 콘셉트입니다.”
충격과 공포라는 표현은 과장되었는지 몰라도, FT-1의 디자인은 분명 과감하고도 파격적이다. 토요타는 ‘역동적이면서도 명쾌한 토요타 디자인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감성과 합리성의 유니크 한 퓨전이 흥미진진하고도 드라마틱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며 FT-1의 디자인을 평가했다. 또한 이러한 과감한 디자인은 디자인 이데올로기 변화를 통해 도요타의 글로벌 고객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더 나은 차세대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콘셉트카 개발 목표를 설명했다.
FT-1 콘셉트에는 ‘펑션 스컬프팅’(Function-sculpting)이라는 토요타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담겨있다. FT-1의 차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근육질의 차체, 바람을 형상화한 듯한 디자인이 그 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볼륨감을 드러내는 붉은 빛 보디와 펜더 디자인은 보는 이를 유혹하여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공기를 빨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내보내도록 디자인된, 흐름을 다스리기 위한 요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트랙을 달리기 위한 자동차의 형태를 빗어낸다. 후미에 장착된 리트랙터블 리어윙은 고속주행 시 펼쳐져 받음각을 조절하며 최적의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인테리어는 철저히 기능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스티어링 휠은 F1 레이싱카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고, 드라이버는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지 않고도 차량에 탑재된 대부분의 기능을 컨트롤 할 수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스포츠 버킷 시트가 적용되었고, 트랙 포지션을 추구하는 스포츠카 콘셉트답게 무척 낮은 시트 포지션으로 설정되었다.
전방을 바라보는 운전자의 시선을 아래 최소한의 정보를 함축 전달해주는 HUD가 장착되었고,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 또한 스티어링 전방에 위치하여 불필요한 시선 이동 없이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차내 인테리어는 불필요한 기능과 장식을 최소화 했고, 최대한의 경량을 추구했다.
토요타는 FT-1 콘셉트에 전방에 엔진이 탑재된 후륜구동 방식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장착된 파워트레인의 제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투명한 글라스 후드 아래 엔진 커버를 그대로 노출시켜 성능에 대한 기대와 신비감을 더했다.
비록 현실세계는 아니지만, 토요타 FT-1은 가상 세계에서 누구나 만나볼 수 있다. 폴리포니 디지털의 플레이스테이션 용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그란 투리스모에서 FT-1 콘셉트카를 다운로드하여 몰아볼 수 있다.
“스포츠카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궁극의 운전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자동차에 열광하는 우리 스스로의 꿈을 표현한 것입니다.” 칼티 글로벌 디자인의 책임자 케빈 헌터의 말이다. “FT-1은 토요타 글로벌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상징합니다. 이 도발적인 콘셉트는 토요타의 진정한 열정과 흥분, 에너지를 담았으며, 감성과 퍼포먼스의 요소들은 토요타의 미래 양산차 디자인에 새겨질 것입니다.”
토요타 FT-1은 말 그대로 콘셉트카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정해진 것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모델인 셈이다. 물론 이번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이 콘셉트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이 모델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글의 서두에서 쓴 것처럼 현재의 토요타에 브랜드를 상징할만한 하이퍼포먼스 모델이 없다고 하더라도, 토요타에게는 FT-1 콘셉트에서 드러난 것처럼 스포츠카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통해 이런 도전과 시도의 결과물을 내놓은 토요타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며, FT-1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포츠카를 꼭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